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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의 심판자 2

gooddaon 2025. 10. 2. 00:00

제2장. 악의 씨앗: 불합리한 시스템과 부조리 


서울의 빛은 화려했지만, 그 이면은 누더기였다.
강서준은 낮 동안에도 저울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밤의 범죄만이 악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뿌리 깊은 악은, 대낮의 태양 아래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관공서의 복도.
서류를 끌어안은 민원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창구 안쪽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커피를 홀짝이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시간은 멈춘 듯 흘러갔다.

한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아들 보상금 신청하려고 합니다. 산재로 죽었는데, 이게 마지막 남은 길이라서요…”

직원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음 달에 오세요. 지금은 담당자가 없거든요.”
단호한 말투. 그러나 그 속에는 무책임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노인은 허공을 바라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울은 무겁게 흔들렸다.
작은 악행이지만, 그것은 반복될수록 사회를 좀먹는 씨앗이었다.

서준은 창구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얽혀 있었다.
사각회의 그림자였다.
관료주의와 부패, 무관심이 한데 뒤엉켜, 결계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손끝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순간 멈췄다.
이곳에서 소거를 시행한다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것이었다.
악은 사람 개개인에 있지 않았다.
더 거대한 구조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서준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증거가 필요해요.”

민아였다.
그녀는 카메라를 든 채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이건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악이에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려요.”

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증거가 세상을 바꾸진 않는다.”

민아는 흔들림 없이 받아쳤다.
“하지만 증거 없이는, 당신의 심판도 허공 속 소문일 뿐이에요.”

잠시 침묵.
서준은 결국 손을 내렸다.
저울은 무겁게 흔들리다가, 다시 고요히 가라앉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은 단순한 처단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날 밤.
서준은 시청 앞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병인 파업, 미지급 임금, 억울한 해고…
확성기 소리가 빗물에 섞여 퍼졌다.

“우린 더는 버틸 수 없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저울은 집단적으로 흔들렸다.
개인의 죄가 아닌, 구조적 억압의 무게가 한꺼번에 기울고 있었다.

군중 사이에서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섞여 있었다.
사각회의 하수인들이었다.
그들은 시위를 유도하고, 분노를 부추겼다.
그리고 그 혼란을 이용해 더 깊은 통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서준은 눈을 좁혔다.
“씨앗은 여기에도 심겨 있군.”

저울은 급격히 흔들리며 은빛을 흩뿌렸다.
군중 속에서 특정 인물들의 죄가 도드라졌다.
폭력을 선동하는 자, 돈을 빼돌리는 자, 고통을 장사하는 자.

결계가 열렸다.
소리가 잘려 나가고, 광장은 묘한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분노를 외쳤다.
단지 몇몇, 선택받은 자들만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서준은 손끝을 내렸다.
“정지.”

순간, 다섯 명의 남자가 동시에 굳어섰다.
군중은 여전히 목청껏 외쳤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서준은 차갑게 속삭였다.
“너희의 죄는 단순한 탐욕이 아니다.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해 더 큰 악을 키운다.
그 무게는 이미 한계를 넘었다.”

저울이 무너졌다.
“소거.”

빛의 파편이 군중 속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그 다섯 명이 사라진 자리만이, 이상할 만큼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민아는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기사 한 편으로 끝날 일이 아니에요.
이건… 전쟁이에요.”

서준은 짧게 대답했다.
“전쟁이라면, 심판자가 먼저 끝낸다.”

 

광장의 소란은 끝내 진압됐다.
남은 것은 젖은 플래카드와 흩어진 전단지뿐이었다.
그러나 서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더 짙게 번지고 있었다.
사라진 다섯 명, 그 빈자리를 사각회는 곧 메울 터였다.

늦은 밤, 민아가 찾아왔다.
작은 카페 구석,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은근한 배경이 되었다.

“오늘, 당신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서로를 찢었을 거예요.”
민아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당신이 없었다는 것처럼, 모든 게 그냥 흘러간다.”

서준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심판은 증명이 필요하지 않아. 단지 정의로울 뿐이지.”

민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너무 무겁지 않나요? 당신 혼자 감당하기에는.”

그 순간, 카페 바깥 유리창에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서준은 천천히 일어섰다.
저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악의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SUV가 두 대, 골목에 멈춰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차례로 내렸다.
이제는 위협도, 협상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한 가지, 제거라는 명령만이 담겨 있었다.

“심판자.”
짧은 부름과 함께 총구가 일제히 들려졌다.
사각회의 사병들이었다.

민아가 숨을 삼켰다.
“여긴… 사람들이 많은데!”

서준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라. 죄 없는 자에겐 닿지 않는다.”

그 말과 함께, 공기가 무너졌다.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모든 것이 멎었다.
카페 안의 시계, 증기 커피머신, 사람들의 대화…
모두 정적 속에 갇혔다.

저울이 떠올랐다.
남자들의 머리 위로 무게가 쏟아졌다.
서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정지.”

사병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공포로 눈동자만이 떨렸다.

“너희의 죄는 단순한 명령 수행이 아니다.
악을 옹호하며, 구조적 폭력을 일삼았다.
스스로 선택한 죄는, 네 손으로 되갚아야 한다.”

그의 손끝이 떨어졌다.
“소거.”

순간, SUV와 그 안의 남자들이 동시에 빛으로 부서졌다.
차체는 바람에 흩어지듯 사라지고, 골목은 공허만 남았다.

민아는 숨을 몰아쉬며 그 광경을 담았다.
렌즈 너머로 본 현실은 꿈 같았다.
그러나 눈앞에 남은 빈자리가 그것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당신… 끝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과 경외가 섞여 있었다.

서준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끝까지 해야 한다.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어.”

며칠 후.
시청의 회의실.
비밀리에 모인 고위 관료들과 기업인들이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다.
서류와 계약서가 오가고, 눈빛은 서로를 재단했다.

“심판자가 움직이고 있다.”
“이미 두 차례, 우리 사람들을 잃었어.”

사각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그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결계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자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도 있다.
결계의 심장을 쥔 건 우리니까.”

회의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준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결계는 그에게도 모든 것을 전해왔다.

그날 밤, 한 재개발 현장에서 화재가 났다.
값싼 인력들이 철거 작업을 하던 건물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불법 자재, 안전 규정 무시, 불법 하청…
모든 악의 조각들이 한꺼번에 불길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러나 지휘자는 아무렇지 않게 뒷주머니에 돈봉투를 쑤셔 넣고 있었다.
“보험으로 메우면 돼. 다 계산된 거야.”

저울은 흔들리며 불길 위로 떠올랐다.
서준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불길 속을 걸어 들어갔다.
불은 그를 태우지 못했다.
결계는 심판자를 해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을 벽 바깥으로 끌어내며, 동시에 지휘자를 노려보았다.
“네 죄는 타인의 피와 노동을 불태웠다.
그 불길, 이제 네 몫이다.”

지휘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몸이 저울에 묶인 듯 공중에 들려 올라갔다.
비명조차 불길에 삼켜졌다.

“소거.”

빛의 파편이 불꽃과 함께 흩어졌다.
그리고 현장은 다시, 고요만이 남았다.

민아는 멀리서 그 광경을 찍고 있었다.
렌즈 너머로 본 불길은 거대한 심판의 의식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되면, 세상이 뒤집힐 거야.”


불길이 잦아들 무렵,
서울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네온사인은 번쩍였고, 술집의 음악은 끊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삶을 잃거나 부서졌다.

신문 한 귀퉁이에 짧은 기사 한 줄.
“재개발 현장 화재, 인명피해 경미.”
경미.
서준은 그 단어에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목숨이 숫자로 바뀌고, 숫자가 다시 경미라는 단어로 축소된다.
그것이 이 도시의 현실이었다.

민아는 기사 스크랩을 흔들며 분노했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요! 분명 수십 명이 다쳤는데… 기사엔 세 줄뿐이라니.”

서준은 창밖으로 번지는 네온빛을 바라보았다.
“언론조차 씨앗의 일부다.
사각회는 단지 그림자가 아니라, 결계의 줄기를 잡고 있다.”

민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대체 어디까지 뿌리내린 거예요?”

그 순간, 저울이 스스로 흔들리며 창문에 은빛을 비췄다.
서준은 짧게 대답했다.
“모든 곳에.”

며칠 뒤,
서울 남부의 한 대기업 본사.
호화로운 회의실,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서 정장이 오갔다.
그들의 대화는 무겁고, 동시에 아무렇지 않았다.

“이번 화재로 손해는 있었지만, 보상금은 이미 줄였네.”
“언론 쪽은 잘 처리했다. 기자 몇 명만 챙기면 충분하지.”
“민원인들? 어차피 소송 비용이 없어서 못 버틴다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잔이 부딪히고, 향기로운 와인이 흘렀다.

그러나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천장 위에, 어둠 속에서 강서준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저울이 회의실을 가르며 솟구쳤다.
빛의 바늘이 일곱 명의 가슴 위에 얹혔다.
서준의 눈빛은 단호했다.

“너희는 책상 앞에서 수천 명을 죽였다.
펜으로, 서류로, 도장으로.
너희 죄는, 불길보다 무겁다.”

순간, 와인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허둥지둥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지.”

정적이 회의실을 삼켰다.
벽시계의 초침조차 멈췄다.

서준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남자들의 눈동자가 공포로 흔들렸다.

“너희는 끝없는 욕망으로 타인의 삶을 갉아먹었다.
이 도시는 너희의 놀이터가 아니다.”

저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거대한 진동이 회의실을 울렸다.

“소거.”

순간, 일곱 명의 존재가 증발했다.
의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문서들은 바람에 흩날렸다.

민아가 숨을 몰아쉬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건… 전부 기록해야 돼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돼요.”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악의 씨앗은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몇몇 가지를 꺾는다고, 뿌리가 사라지진 않아.”

민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디까지 할 건데요?”

서준은 짧게 대답했다.
“끝까지.”

그날 밤, 서준은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계는 광활했고, 그 속의 죄는 끝이 없었다.
거리의 상점, 고급 빌라, 재개발 구역, 관공서, 법정, 언론사…
어디에나 뿌리내린 씨앗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울이 끊임없이 기울었다.
심판할 악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서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단지 무겁게, 그러나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모두 멸살한다.”

결계의 빛이 흔들리며, 도시가 낯선 파동으로 뒤덮였다.
사각회는 이제 심판자를 단순한 전설로 두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진짜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 그림자가 모였다.
악의 씨앗이 거대한 숲으로 번져가듯, 사각회는 세력을 불려나갔다.

민아는 일기를 쓰듯 카메라에 속삭였다.
“오늘도 심판자가 움직였다.
사라진 자들은, 모두 악을 먹고 살던 자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평온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 기록이, 언젠가 폭발처럼 터져 나올 때.
세상은 변할까?
아니면, 더 무너질까?”

서울의 하늘은 검게 가라앉았다.
번개가 결계를 따라 흐르고, 저울은 은빛을 흩뿌렸다.
그 빛 속에서, 강서준은 고독한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독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확신이었다.

“이 세계에, 부조리는 남지 않는다.”

그의 선언과 함께, 2장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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